경복궁의 겨울풍경/2편
경복궁(景福宮) |
(사적 제117호)
신무문(神武門), 집옥재, 향원정, 아마산굴뚝
신무문(神武門)
집옥재
향원정
아마산 굴뚝은
경복궁(景福宮) |
신무문(神武門)은 세종 15년
경복궁이 창건될 때 북문(北門)으로 들어섰다가,
성종 6년(1475) 예문관 대제학 서거정의 건의에 의해 신무문(神武門)이란 이름으로 편액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신무문은 고종 2년(1865) 9월 흥선대원군
이하응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신무문(神武門)이란 이름으로 재등장합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닫혔던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神武門)과 주변 집옥재 일대가
45년만에 시민에게 개방이 되면서 관람객들이 줄이 이여지고 있습니다.
오랜동안 청와대 보안.경호를 이유로 폐쇄됐었던 이곳 신무문 주변 일대는 조선시대 왕들이
후원(현재의 청와대)을 산책하거나 병사들을 사열할 때 사용했던 문으로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때 이곳을 거쳐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었다고 합니다.
고 박정희 정권 시절 실세였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청와대 경비를 맡았던 수경사 병력의 사열식(국기하강식)을 받았던 곳이기에
이곳을 돌아 볼때마다 색다른 기분이 들곤 합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청와대 방향으로는 사진을 찍울 수 없었던 곳이였지만
신무문과 마주한 청와대 본관을 배경으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동안 금족령이 내려졌던 우리 고궁의 옛 모습을 되찿은 것이 참으로
다행 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합니다.
함께 개방된 집옥재는 신무문 동측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쪽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왼쪽에 팔각건물인 팔우정, 오른쪽에 협길당이란 건물이
자리합니다.
이들 건물들과 함께 지금은 없어진 보현당, 가회정 등이 주변에 있어
고종이 서재겸 별채로 사용하던 곳입니다.
집옥재는 고종 13년(1876) 경복궁이 대화재를 만나
왕이 창덕궁으로 잠시 옮겼다가 동 22년(1885) 경복궁으로 환궁해
25년(1888) 내전을 복구할 때까지 왕이 서재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을 침전이라고 합니다.
왕의 침소인 강년전을 지나 양의문을 들어서면 교태전입니다. 교태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세종 22년인 144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왕비의 침전으로 대궐 안의 살림살이를 총지휘하던 곳이 바로 교태전입니다.
경복궁을 찿을때마다 들리는 아미산의 굴뚝의 멋스러운 매력에
백야의 발길이 한동안 머문후 되돌아 나오는 입구에는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경복궁으로 밀려 들어 옵니다.
경복궁을 뒤로 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2009 서울스노잼" 행사장으로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