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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수궁]의 만추 / 정동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가을빛 덕수궁.
    ★고궁·사찰·성당/고궁 2017. 11. 16. 20:55






    [덕수궁(德壽宮)]의 만추

    정동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가을빛 덕수궁

    (2017/11/14)







































































































































































































































































































































    [덕수궁(德壽宮)]의 만추

    정동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가을빛 덕수궁

    (2017/11/14)


    만추의 가을 끝자락 곱게 물든 고궁의 가을빛을 찿아 발길이

    바빠지는 요즘 백야의 카메라가 과로(?)를 하지만 덕수궁의 곱게 물든

    가을빛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창경궁과 창덕궁을 돌아 덕수궁의 대한문을 들어 섭니다


    조선시대의 궁궐로서 경운궁으로 불리다가 고종황제가 1907년 왕위를

     순종황제에게 물려준 뒤에 이곳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서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덕수궁 자리에는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고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궁궐이 모두 불에 타고 없어서 임시로

     월산대군의 집을 거처로 정하고 선조 26년(1593)부터 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근처의 계림군과 심의겸의집 또한 궁으로 포함하였으며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즉위 3년(1611)에 이곳을 경운궁으로 고쳐 부르고

    1615년 창경궁으로 옮길 때까지 왕궁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선조의 왕비인 인목대비가 경운궁으로 쫓겨나와 있게 되었는데

    그 후로 광해군은 이 곳을 서궁으로 낮추어 부르게 하였으며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1623년에 물러나면서 인조는 즉조당과 석어당만을 남기고 나머지 건물들을

     옛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그 뒤로 고종황제가 러시아공관에서 옮겨오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되었는데 그때부터이 궁은 비로소 궁궐다운 건물들을 갖추게 되였고
    1904년의 큰 불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에 타 없어지자 서양식의 건물인

     석조전들이 지어지면서 원래 궁궐 공간의 조화를 잃어버리게 되였으며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정문이 바뀐 것입니다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던 인화문이었는데,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비록 조선 후기에 궁궐로 갖추어진 곳이지만 구한말의 역사적

     현장이었으며 전통목조건축과 서양식의 건축이 함께 남아있는 곳으로

    조선왕조의 궁궐 가운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국사공부를 게을리 했던 기억에 고궁을 찿을때마다

    새로운 자료를 찿아보며새롭게 국사에 대한 공부를 익히는 기분도 색다

    르기만 합니다. 덕수궁을 돌아보고 덕수궁 돌담길 옆골목의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의 정동전망대에 올라  인왕산과 북악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의

    가을빛으로 물든 서울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창경궁과 창덕궁,덕수궁 출사길을 접고 귀가길을 재촉합니다



    덕수궁홈페지 : http://www.deoksugu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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