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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南山)
(08/12/13)
남산은 본래 목멱산이(木覓山)라 불리며 조선 도읍 초기부터 신성한 영산으로 여겨져 왔다네요
오늘은 숭례문에서 걷기 시작하여 남산을 오릅니다
국보1호인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이 천막을 치고 복구 공사중이네요 마음이 아픔니다.
퇴계로 서울역 고가도로 넘어로 아침 햇살에 서울역사가 가까이 보입니다.
남산 공원 입구쪽 도로가에 용궁사란 조그만 사찰 옥상에 부처님상이 숭례문쪽을 향하여 지켜 보고 있습니다.
남산 공원을 올라서면서 예전 남산 야외 음악당이 있었던 근처에 김유신 장군의 동상이 반깁니다.
남산 공원 산책로를 따라 조각 작품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한적하고 여유로움을 함께 합니다.
안중근 (安重根 1879∼1910)
[생애와 업적]
안중근은 1879년(고종 16) 황해도 해주에서 안태훈의 아들로 태어났다.어려서부터 말을 잘 탔을 뿐만 아니라 사냥을 할 때 총을 잘 쏘아 명사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어 나라의 주권을 빼앗자 안중근을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다.
이어 자신의 석탄 상점을 팔아 1906년 남포에 삼포 학교와 돈의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러내는 데 힘썼다.
이듬해 일본이 우리나라 군대를 해산하자 안중근은 만주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1907년 이범윤 등과 함께 대한의군을 조직하고 참모 중장을 맡아 일본군과 맞써 싸웠다.
1909년 러시아로 간 안중근은 김기룡 등 12명과 함께 '단지회'라는 비밀 결사를 만들었다.
이때 이들은 이토히로부미와 이완용을 없애기로 손가락을 잘라 피로 맹세했다.
또한 3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죽음으로 국민들에게 속죄하기로 약속했다.
안중근은 그 해 9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회담을 하기 위해 하얼빈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없앨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안중근은 단지회 회원들과 암살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이토 히로부미가 도착하기로 한 10월 26일, 안중근은 일본인 기자로 변장하고 하얼빈 역에 숨어 들어갔다.
이토 히로부미가 기차에서 내려 환영객들을 향해 나가는 순간 안중근은 3발의 권총을 쏘았다.
2발은 이토 히로부미의 왼쪽 가슴에, 1발은 심장에 명중시켰다.
이어 안중근은 태극기를 꺼내 우렁찬 목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그 자리에서 붙잡혔다.
안중근은 그 뒤 경찰 심문 과정에서 자신은 대한의군 참모 중장이며 나이가 31세임을 밝히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의 독립 주권을 빼앗아간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 평화를 해치는 자이다.
그러므로 대한의군 참모 중장의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것이지,
내 개인의 생각으로 그를 죽인 것이 아니다."라고 의연하게 밝혔다.
또한 여섯 차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일반 살인범으로 취급하지 말고 전쟁 포로로 대할 것을 주장하였다.
재판장에서 꿋꿋한 자세로 당당하고 논리 있게 답변하는 안중근을 보고 일본인 재판관과 검사들도 감탄했다고 한다.
죽음을 며칠 앞두고 안중근은 두 동생에게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내 시신을 국내로 옮기지 말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리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고 유언을 했다.
모진 고문과 여러 차례의 재판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10시 뤼순 감옥에서
사형 당했다.
주말 산행을 대신하여 남산을 오릅니다.
남산을 오르기 위해 숭례문에 도착합니다. 숭례문에서 출발하여 남산을 오르기 전에
둘러보려던 숭례문은 포장으로 둘러져 돌아 볼수가 없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빠른 복구를 기원하는 마음을 뒤로 하고 남산을 향합니다.
주말의 겨울 이른 아침이기에 산책객도 없는 한가로운
남산 오름길....
계단을 올라 서면서 겨울 아침 햇살이 싱그럽기만 합니다.
70년대 전후 가끔씩 올랐던 남산 공원의
모습은 찾아 볼길이 없고
잘 정돈된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조각 작품들이 쓸쓸히 공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김유신장군,김구선생,이시영선생등의 동상들이
공원을 찿는이들에게 그들이 기억을
일깨워 줍니다.
나라사랑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가파른 계단을 또한번 올라서면서 예전의 남산 식물원 공원터 입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아름다운 조경과 함께
맞아 줍니다.
커다란 바윗돌에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이 넘쳐나는 글들이
담겨져 글을 읽는이들의 마음을 감동 시키고....
안중근 의사의 생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문무를 겸비한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을 둘러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라 사랑의 마음이 다져짐을 느끼게 됩니다.
차나 케블카로 오르곤 했던 남산을 걸어서 오르며 느끼는 기분은
또다른 느낌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나라 사랑과 자유 평화을 위해
목숨을 던진 넋을 위로 하는듯
남산의 하늘을 비상하는 비들기들이 마냥 평화롭기만 합니다.
한동안 안중근 의사의 깊은 뜻이 담긴 글에 머물고는
부지런히 남산의 정상을 향해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