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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북동 길상사를 다녀 왔습니다.
    ★고궁·사찰·성당/성당·사찰 2011. 5. 4. 00:28

     

     

     

     

    성북동 길상사를 다녀 왔습니다

     

     

     

     

     

     

     

     

     

     

     

     

     

     

     

     

     

     

     

     

     

     

     

     

     

     

     

     

     

     

     

     

     

     

     

     

     

     

     

     

     

     

     

     

     

     

     

     

     

     

     

     

     

     

     

     

     

     

     

     

     

     

     

     

     

     

     

     

     

     

     

     

     

     

     

     

     

     

     

     

     

     

     

     

     

     

     

     

     

     

     

     

     

     

     

     

     

     

     

     

     

     

     

     

     

     

     

     

     

     

     

     

     

     

     

     

     

     

     

     

     

     

     

     

     

     

    성북동 길상사를 다녀 왔습니다.

     

    삼청각을 돌아 보고 귀가길에 연등이 화려한 길상사를 들어 섭니다.

    지난날 삼청각과 함께 이름난 요정이였던 대원각이 길상사라는 사찰로 변신을 하게 된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길상사를 찿는 발길이 많아 지곤 합니다.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는 얼마전에 입적하신 법정 스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무소유를 저술하신 스님답게 아무런 욕심없이 사시다가 가셨기에 우리에게 보다 더 많은 감명,

    감화를 주셨고 오늘의 길상사라는 사찰이 있게 한 김영한님을 되돌아 봅니다.

     

    길상사는 1987년 공덕주 길상화(吉祥花) 김영한님이 법정스님께 요정이던 대원각을

     청정한 불도량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였고, 1995년 법정스님께서 그 뜻을 받아들이셔서 6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을 하였고

    1997년에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등록하고 같은 해 2월14일에

    초대 주지로 청학 스님 취임 및 1차 도량정비불사 회향을 하였습니다.

    법정스님은 평소에는 깊은 산중에 칩거하시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상경하셔서

     이 곳에서 법회를 하시다고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서 기거하셨다가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길상화 김영한님(1916-1999)은 일제치하에 태어나 성장하였고,

    16살의 나이에 사라져가는 한국 전통음악과 가무의 전습을 위하여 조선권번을 세워

     불우한 인재들에게 고전 궁중 아악과 가무 일체를 가르친 하규일 선생님의 문하에서

     진향이라는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습니다.

     

    한때 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었던 그녀는,

    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뒤에 몇 편의 수필과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하규일 선생 약전], [내 사랑 백석]등의

     저술을 내기도 했습니다.

     

    일찍이 그녀는 바위사이 골짜기에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의 배밭을 사들여

     잠깐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곳은 뒤에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제 3공화국 시절 국내 3대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이 되였습니다.

     

    길상화님은 노년에 법정스님의[무소유]를 읽고 감명 받아 스님을 친견한 뒤

    생애의 높고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였다. 그 후 10년에 걸쳐 사양하시는 스님께

     받아 주시기를 거듭 청하여 결국, 1995년 그 뜻을 이루게 됩니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날,

    그 아름다운 법석에서 그녀는 법정스님으로부터 그저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만을 받았고, 7천여평 절터와 전각 모두를 보시하는 그녀의 바람은 단하나, 이곳이 시민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 그들 모두가 고뇌의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였고. 그 날 그녀는 수천의 대중 앞에서 단 두어 마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간결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진실하게 울려나오는 그녀의 음성에는 곡절 많은

    그녀 인생의 슬픔을 넘어선 위대한 비원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1999년 11월 14일 그녀는 육신의 옷을 벗었습니다.

    하루 전날 그녀는 목욕재계하고 절에 와서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생애 마지막 밤을 묵었으며,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재 후 유언대로

    첫눈이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지난날 질퍽하고 비밀스러운 술자리가 펼쳐졌을 사찰의 많은 별채들이 지금은

    스님들의 처소와 도량으로 바뀌여져 있어 사찰을 돌아보는 동안 내내

    다른 사찰을 돌아 볼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석가 탄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기에 길상사 사찰에도 왕생극락을

    염원하는 연등들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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