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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고궁·사찰·성당/고궁 2008. 10. 27. 12:31

     

     

     

     

     

     

     

     

     

     

     

     

     

     

     

     

     

     

     

     

     

     

     

     

     

     

     

     

     

     

     

     

     

     

     

     

     

     

     

     

     

     

     

     

     

     

     

     

     

     

     

     

     

     

     

     

     

     

     

    경복궁 (08/09/15) / 1편

     

    추석 연휴를 맞아 자주 찾던 경복궁을  다시 찾습니다.

    추석 귀향으로 고향을 찿은 많은 시민들로

    조금은 한가로우리라는

    생각으에 경북궁과

    청계천을 돌아 덕수궁까지 돌아 볼 일정으로 아침 일찍 경복궁에 도착합니다.

     

    경복궁의 흥례문 앞에서는

    수문장 교대 재현식 행사가 이미 진행 되고 있고....

    외국 단체 관광객들이 줄을 잇습니다.

    외국인들이 곱게 한복을 입고

    고궁을 찾은 모습이

    색다르면서도 보기 좋습니다. 한복을 곱게 입은

    내국인은 별로 보이지 않고

     외국인이

    더 많기만 합니다. 

     

    근정전을 돌아 보면서 또다시 단청의 아름다움과 건축미에

    푹~ 빠져 듭니다.

    자주 찾아 보는 고궁의 단청이지만 찿을때마다

    또다른 매력을 느끼곤 합니다.

     

    오늘은 근정전에서 동궁으로 이여지는 동쪽 측면과

    뒷쪽에서 근정전의 멋스러움을 보면서

     또다른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에 흠뻑 빠져 듭니다.

     

    한발짝 앞으로 좌우로 옮겨 가면서 각도를 달리하며 시각을 달리 할때마다

    또다른 새로운 느낌이 달라지는

    건축미에 우리 전통 건축미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들어갑니다

     

    근정전의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서쪽문을 통해 경회루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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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웠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외국에서 오는 사신을 대접하도록 하였으며,

    연못을 크게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는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주로 경복궁에서 지냈는데,

    집현전을 두어 학자들을 가까이 하였다.

    경회루의 남쪽에는 시각을 알려주는 보루각을 세웠으며,

    궁의 서북 모퉁이에는 천문 관측시설인 간의대를 마련해 두었다.

    또한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시각과 4계절을 나타내는 옥루기를 설치하였다.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창덕궁·창경궁과 함께 모두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

    그러나 1895년에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의 행동을 하여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현재 궁궐 안에 남아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

    재수각·숙향당·함화당·향원정·집옥재·선원정 등이 있다.


    중국에서 고대부터 지켜져 오던 도성(都城) 건물배치의 기본형식을 지킨 궁궐로서,

    궁의 왼쪽에는 역대 왕들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들의 배치는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거나 왕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는 근정전과

    왕이 일반 집무를 보는 사정전을 비롯한 정전과 편전 등이

    앞부분에 있으며,

    뒷부분에는 왕과 왕비의 거처인 침전과 휴식공간인 후원이 자리잡고 있다.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격식인데,

    이러한 형식은 이 궁이 조선의 중심 궁궐이므로 특히 엄격한 규범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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