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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三角山)의 잔설★산행사진/북한산 2010. 3. 25. 11:22
삼각산(三角山)의 잔설
인수봉
백운대
영봉
좌로부터 만경대,백운대,인수봉
영봉
도선사 입구
삼각산(三角山)의 잔설
잔설의 삼각산 백운대를 오릅니다.
꽃피는 3월이란 말이 무색할만큼 영하의 날씨와 폭설까지 이여지는 쌀쌀한 날씨의
산행이지만 역시 상큼하고 맑은 공기와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 할수 있는
산행길이기에 발길이 가볍기만 합니다.
잔설의 인수봉 암벽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의 열정으로
인수봉 암벽에는 온기가 느껴지는 듯 활기찬 모습들이 보기 좋습니다.
백운대를 오르는 계곡 등산로에는 얼어붙는 빙판길이지만 삼각산의 가장 높은 백운대를 오르는
산님들의 발길이 줄을 잇습니다.
잔설의 바위틈 한켠에는 진달래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신바람나게 비상하는 까치님들의 날개짓도 봄소식을 전하는 듯 조금씩 조금씩 봄빛으로
물들어가는 산자락의 능선을 타고 잔설과 어우러진 멋스러움의 삼각산이 암봉들이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 옵니다.
백운대를 돌아 영봉에 올라 삼각산의 봄이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동안 머무는 동안
백운대,만경대,인수봉이 어우러져 삼각을 이루는
삼각산의 멋스러움에 흠뻑 취하고는
도선사로 하산길을
제촉합니다.
삼각산(三角山)
삼각산(三角山)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으로서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 787.0m)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쥐라기 말의 대보화강암(흑운모 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으로 되어 있으며,형상을 달리한 화강암 돔(granite dome)으로 되어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돔을 형성하는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하고 있다.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곳이 있어 많은 등반객 또는 관광객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만경대의 옛이름은 국망봉이라 호칭되었으며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바로 이 삼각산을 말한다.
그리고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싯귀에 있듯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가노라 삼각산아 / 김상현
가노라 三角山(삼각산)아
다시 보쟈 漢江水(한강수)야
故國山川(고국 산천)을 떠나고쟈 하랴마난
時節(시절)이 하 殊常(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나는 이제 떠나가노라(언제 올지 모르지만) 삼각산아, 돌아와서 다시 보자꾸나 한강물아.
정든 고국의 산천을 떠나기는 하겠다만
지금의 시대가 너무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워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김상현(1570-1652)은 병자호란때
강화 남문에 올라 자폭한 우의정 김상용의 친동생으로 대제학을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을때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끝가지 척화 항전(斥和抗戰)을 주장하던 작자가
패전 후 청나라로 잡혀가면서 부른 노래로, 비분 강개한 심정이 응어리져서 나타난 작품이다.
'三角山'과 '漢江水'는 조선조의 왕도(王都)를 상징한 것이다.
이 길이 마지막 길이 될지도 모르는 지은이로서는 다시 한 번 불러보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일 것이다.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이 절규로써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시국이 이렇게 어지러우니 다시 이 조국 강산에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하면서
떠나가던 찢어지는 심정은 우리 민족 모두의 아픈 가슴이었으리라.
임진란과 병자란은 민족의 치욕이요 고난이었다.
이러한 시국에 희생된
절개 있는 선비들이 수난당하는 모습이 미루어 엿보인다.
민족의 치욕이요 고난인 병자호란으로 고생한
절개있는 선비의 비분강개가 가슴을 아프게 하는 김상현은 3년후 고국땽으로 돌아와
우의정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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