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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출산 도갑사
    ★고궁·사찰·성당/성당·사찰 2009. 9. 22. 12:26

     

     

     

     

     

     

    월출산 도갑사(道岬寺)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우는 월출산 남쪽 도갑봉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량으로 도갑사는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전합니다.

     

    원래 이곳은 문수사라는 절이 있던 터로 도선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자라 중국을 다녀온 뒤 이 뮨수사터에 도갑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세조2년(1456년) 수미왕사가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과

    12개의 암자를 세웠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여건속에서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케 합니다.

     

     연담선사,허주선사,초의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들이 주석 하시면서

     깨달음의 참다운 이치를 널리 펴치신 고찰입니다.

     

    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제144호),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보현보살.코끼리상(보물 제1134호),대형석조와 도선수미비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월출산 도갑사(道岬寺)/(09/09/12)

     

    서울을 출발한지 5시간여만에 월출산의 도갑사에 도착합니다

    추석을 앞둔 호남 나주 평야의 황금빛 들녘을 지나면서 암봉으로 이여진  웅장한 월출산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다가 옵니다.

     

    낮은 먹구름이 지나며 바람이 세차게 부는가 하면 금새 파~란 하늘에

    뭉게 구름이 또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연출하는 도갑사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에 도착합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으로

    ,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절의 입구에 있지만 포장이 드리워져 보수 작업을 하기에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으며

    건물 위쪽에는 도갑사의 정문임을 알리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도갑사 해탈문은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山門)건축으로, 청평사 회전문(보물 제164호)과

    비교되는 중요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해탈문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들어 서면 5층석탑과 함께 3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도갑사를 찿는이들의 발길을 반깁니다.

    해설사님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도갑사의 넓은 사찰 구석 구석을 돌아 봅니다.

     

    국보와 보물들을 돌아 보며 월출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안내 간판앞에서는

    월출산 천황봉 정상으로 오르고 싶은 충동이 앞서지만

    이번 여행길에 월출산 정상을 오르지 못하는 일정이 아쉽기만 합니다.

     

    전국 사찰을 돌아 보면 거의 모든 사찰이 하나같이 도선국사[道詵國師] 가 창건

    이라는 설명이 늘 함께 합니다.

     

    그 유명한 도선국사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영암땅.. 그리고 도갑사.

    도선의 출생과 구림 마을이란 지명의 유래와

    도선국사에 대한 자료를 옮겨 봅니다.

     

    도선의 출생과 구림의 지명유래
    겨울에 성기동(聖起洞)의 한처녀가 통샘에서 
    빨래를 하다가 오이 하나가 관음천을 따라 떠내려오자 그것을 건져 먹었다.
    그 후에 처녀가 아이를 배어서 낳게 되자 부모가 부끄럽게 여기고는아이를 구림의 국사방위 위에 버렸다.

    처녀가 가서 보니 비둘기가 내려와 아이에게 날래를 깔아주고 먹이를 갖다 주면서 기르고있었다.
    그 부모들도 신기하게 여겨서 아이를 데려다 기르니 아주 영특하였다.
    비둘기숲 즉 구림(鳩林)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도선국사[道詵國師]  

     

     신라말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사. 성은 김씨. 영암출신. 왕가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스님이 되었다. 그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에 곡성 동리산(桐裏山)의 혜철(惠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에는 천도사(穿道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운봉산(雲峯山)에 굴을 파고 수도하기도 하였으며, 태백산에 움막을 치고 여름 한철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 옥룡사(玉龍寺)에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언제나 수백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 일설에 의하면 도선은 당나라로 유학가서 밀교승려 일행(一行)으로부터 풍수설을 배워왔다고 한다.

    그러나 일행은 당나라 초기의 승려이고 도선의 생몰년은 당나라 말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연대에 모순이 있고,

    도선이 당나라에 유학하였다는 것도 신빙성이 없다.

     

    도선은 승려로서보다는 음양풍수설의 대가로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학의 역사가 신라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도선의 생존연대가 그때였기 때문이다.

     그뒤부터 도선 하면 비기(秘記), 비기 하면 풍수지리설을 연상할 만큼

    도선과 풍수지리설 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맺어졌다.

     

    그리고 언제나 도선이 풍수지리설 같은 주술적 언어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는 역사적 실재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신화적 존재로 파악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도선이 역사적으로 유명해진 것을 고려 태조에 의해서였다.

    875년(헌강왕 1)에 도선은 "지금부터 2년 뒤에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고 하였는데,

    그 예언대로 송악에서 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 예언 때문에 태조 이후의 고려 왕들은 그를 극진히 존경하였다.

     

     태조는 도선으로부터 직접 설법을 들은 일은 없으나

    사상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선의 나이 37세 되던 해,

     그는 옥룡사에 머물면서 입적할 때까지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당시 제자의 수가 수백 명이라는 점에서 옥룡산문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도선은 옥룡사에 머문 지 35년이 되는 때인 898년(효공왕 2)에 세수 72세로 입적하였다

    .도선의 저서라고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도선비기>, <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

     <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 있다.

     

      첨부이미지

     

     

    ㅁ승용차
    서울 출발 : 서울 - 광주 - 영암 - 도갑사  
    서울 - 목포 - (국도2번) 독천 - 도갑사 (서해안고속도로 이용시)
    광주 출발 : 광주 - (국도13번) 나주 - 영암 - 도갑사 / 목표 출발 : 목포 - (국도 2번) 독천 - 도갑사

    ㅁ고속버스
    서울 ↔ 광주 (매 5분, 소요시간 4시간) / 부산 ↔ 광주 (매20분, 소요시간 4시간 10분)
    대구 ↔ 광주 (매30분, 소요시간 3시간 30분) / 서울 ↔ 영암 (매60분, 소요시간 5시간)

    ㅁ직행버스
    광주 ↔ 영암 (매10분, 소요시간 1시간 20분) / 목포 ↔ 영암 (매20분, 소요시간 50분)

    ㅁ도갑사행 군내버스
    오전 8시 10분, 9시 40분, 11시 30분 / 오후 1시 15분, 3시 40분, 5시 25분, 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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