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봉화의 춘향전 이도령 생가 계서당
    ★여행 사진/국내여행 2009. 10. 27. 15:40

     

     

     

     

     

     

    춘향전의 이(성)도령 생가 계서당

     

     

    계서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계서 성이성(溪書 成以性)(1595~1664)선생이 살던 곳으로

     성이성은, 창녕 사람으로 남원 부사(南原 府使)를 지낸 부용당 성안의(芙蓉堂 成安義)선생의 아들로

     인조 5년(1627) 문과에 급제 했으며 진주부사(晋州府使)등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내고 4번이나 어사로 등용되었으며

    근검과 청빈으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훗날에 부제학(副提學)으로 추서받고 청백사(淸白史)로 녹선(錄選)되었습니다..

    계서당은 광해군 5년(1613)에 성이성 선생이 건립하여

     문중자제들의 훈학과 후학배양에 힘쓰던 곳으로  정면 7칸, 특면 6칸의 ㅁ자형으로 되어 있고,

      팔작지붕의 사랑채(정면3칸, 측면 3칸)와 중문칸으로 연이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춘향전 계통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세대 설성경 교수가

    최근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라는 주제로 <춘향전> 이몽룡의 실제 인물이 성이성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곳으로. 실제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 이몽룡이 읊었던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는 시는 성이성이 쓴 시로

     4대 후손 성섭이 지은 <교와문고 3권>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이몽룡과 흡사한 성이성 선생의 행적내용이 계서공파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계서선생일고>,

     <필원산어>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고. 현재 계서당은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171호로 지정되여 있습니다. 

     

     

     

     

     

     

     

     

     

     

     

     

     

     

     

     

     

     

     

     

     

     

     

     

     

     

     

     

     

     

     

     

     

     

     

     

     

     

     

     

     

     

     

     

     

     

     

     

     

     

     

     

     

     

     

     

     

     

     

     

     

     

     

     

     

     

     

     

     

     

     

     

     

     

     

     

     

     

     

     

     

     

     

     

     

    춘향전의 이(성)도령 생가 계서당

     

    봉화군 펨투어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의 정인( 情人) 이도령의 생가츨 찿습니다.

    춘향전 하면 남원의 광한루가 떠오르고 한두번 다녀 왔던 기억이 있기에 의외로 봉화에서

    춘향과 인연이 있는곳 계서당이 있음에 놀랍기만 합니다.

     

    근자에 설성경교수(연세대)의 논문 "이몽룡(성이성)의 러브스토리" 라는 연구논문으로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인 이 도령의 모델이 성이성이라고 알려지면서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곳이

    봉화읍 물야면 가평리의 이몽룡 생가 계서당이라는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계서서당 입구에 도착 계서당으로 들어서는 마을 소로길은

    가을 들녘의 풍요로움이 넘치는 아름다운 수채화 한폭을 연상케 합니다.

     

    춘향전의 주인공인 이몽룡(성이성)의 생가는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에 위치하는데,

    지금까지 역사적 가치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었으나 최근 설성경교수의 연구논문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로맨티스트인 이몽룡이 봉화사람이라고 알려 지고 있습니다.

    설성경 교수는 춘향전의 이 도령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으로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돼 호남 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찾아 옛 애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죽고 없었다”고 주장한것이 춘향전 스토리처럼 너무나 흡사하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풍자적 판소리계의 소설 "춘향전"은

    학창시절에 시험 문제로도 자주 출제가 되던 기억과 영화와 연극으로도 예나 지금이나

    춘향의 절개와 양반의 신분을 뛰어 넘는 러브 스토리로 우리들

    모두의 기억에 지라  하고 있는터이기에

    기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춘향전의 스토리를 되새겨 봅니다.

    조선조 숙종 대왕초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는 퇴기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기 갖기를 소원하여 성참판과 동거하여 춘향이라는 아리따운 딸을 낳았고
    자색이 천하에 일색인 춘향은 성장하면서 시서에 능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은

     방자를 데리고 광한루에 올라 춘흥에 겨워 시를 읊고 있었습니다..
    이때 춘향은 향단이를 데리고 광한루앞 시냇가 버들숲에서 그네를 뛰며 놀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춘향을 발견한 이도령은 한눈에 반하여 방자를 시켜 춘향을 불러오게 합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는 헤어지면서 이도령은 밤에 집으로 찾아가겠노라고 약속을 합니다.


    글방으로 돌아온 이도령은 춘향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며,

    책읽기도 건성이였습니다. 드디어 밤이 되자 이도령은 방자를 앞세워 춘향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는 춘향과 백년가약을 맺고자 월매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힙니다..

    월매는 난봉꾼의 수작 정도로 여기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두사람의 혼약을 허락 합니다.

    이도령은 밤마다 춘향을 찾아 사랑을 속삭이던중 어느날 이부사가

    내직으로 전출하게 되어 이도령은 부득불 부친을 따라 상경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이도령은 춘향에게 후일을 약속하고 서울로 떠나고

    춘향은 이도령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이때 새로 부임한 신관 사또 변학도는 호색한답게 정사는 돌보지 않고 기생점고부터 시작합니다.
    50여명의 기생을 점고한 그는 마지막으로 춘향을 발견하고 수청을 강요합니다.
    춘향은 수청을 거절합니다.변학도는 크게 노하여 태형을 가하지만 춘향은 죽기를 결심하고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옥에 갇힌 춘향은 임을 그리워 하다가 잠이 들어 꿈 속에서 이비(二妃)를 만납니다.

    지나가는 장님에게 물어보니 서방님이 돌아오고 부귀영화를 누릴 꿈이라고 일러줍니다.


    변학도는 자신의 생신연에 마지막으로 춘향의 의중을 들어보기로 하고

    만약 그때도 거절하면 처형하겠다고 합니다.
    한양의 이도령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춘향과의 재회만을 생각하던중 과거에 급제하여 춘향의 의중을 들어보기로 하고 
    전라도로 내려온후 하루라도 빨리 춘향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남원으로 향합니다.
    도중에 농부로부터 춘향이 봉변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걸인복색을 하고 춘향의 집으로 가서 월매를 만납니다.

     월매는 딸을 구해줄 이어사가 걸인 복색으로 나타나자 실망하여 딸이 죽게 되었다면서 신세타령을 늘어놓습니다.
    이어사는 옥중으로 춘향을 찾아가자 춘향은 이어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변학도의 생신연이 벌어지는 날이 되었습니다.
    각 고을의 관장들이 모여 들고. 생신연은 성대하게 열리고

    이어사는 연회에 걸인의 행색을 하고 참석하여 차운(次韻)을 제의하여

    높을 고(高)에 기름 고(膏) 두 자를 운으로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燭淚落時 民淚落歌聲高處 怨聲高"란시를 지어

    탐관오리의 학정을 비판합니다.


    이어서 어사또가 출도하여 탐관오리 변학도를 봉고파직하고 춘향을 구합니다.
    춘향은 수절로 정렬부인으로 봉해져 삼남이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며, 이어사는 후에 좌우영상까지 지냅니다.
    준미주는 천인혈이요 (金樽美酒 千人血 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사람의 피를 뽑아 만들었고,)
    옥반가효 만성고라 (玉盤佳肴 萬姓膏 옥쟁반에 담긴 맛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을 짜서 만들었으며)
    촉루락시에 민루락이요 (燭淚落時 民淚落 촛대에 흐르는 촛물은 백성들의 눈물이요,)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歌聲高處 怨聲高 노랫소리 높은곳에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가 높더라 .)

      

    봉화 펨투어에 생각지도 않았던 춘향전의 고전을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였기에

    더욱 알찬 여행이 되였습니다.

     

     

      첨부이미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