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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고궁·사찰·성당/성당·사찰 2010. 4. 26. 20:55
경주 불국사(佛國寺)
다보탑 ▶ 견고한 화강암을 자유자재로 다뤄 조형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석탑이다
석가탑 ▶ 안정감과 우아함을 지니고 있어 신라 석탑의 정형을 이룩한 대표적인 탑이다
경주 불국사(佛國寺)
오랜만에 경주의 불국사를 찿습니다.
천년 세월을 넘어 긴긴 역사의 뒤안길을 거슬러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불국사를 찿으면 숙연해 지는 마음이 되는 듯 합니다.
석굴암과 함꼐 신라 불고 예술의 귀중한 유적으로 삼층석탑,다보탑,백운교,연화교...
우리 옛 선조들의 뛰여난 석공예의 우수성에 세계인들이 놀라고 드디어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여 있는 불국사는 오늘도 내국인과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여 집니다.
대웅전 뜨락에 들어서자 좌우의 다보탑과 석가탑의 아름다움을 보며 놀랍기만 합니다.
돌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곡선미와 미적 감각의 정교함이
목각으로 만든 것 보다 더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초등학교때부터 들었던 무영탑의 전설이 떠오릅니다.
백제의 서울 사비성에 살고 있던 이름난 석공 아사달은
불국사의 삼층석탑을 만들기 위해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아내 아사녀를 두고 신라로 가게 되였고
신라의 서라벌에 도착한 아사달은 부처님 앞에 꿇어 앉아 탑 공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빌었답니다.아사달은 아사녀를 그리워하면서도 오로지 탑 만드는 일에만 전념 하였고
아사달이 고향을 떠난지도 어언 삼 년의 세월이 흘러 탑도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고향에 남아있던 아사녀는 더 참고 기다릴 수 없어서
아사달을 찾아 서라벌로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사녀는 불탑을 쌓는 사람은 타인과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스님의 말씀에아사달을 만날 수가 없었고. 아사녀는 아사달이 탑을 완성하면 연못(영지연못)에 탑이 비칠거라는 얘기를 듣고
날마다 연못가에 나가서 탑 그림자가 비치기만을 기다렸답니다.
옛날 신라시대에는 불국사의 청운교 밑이 연못이었고 청운교 일부가 물 속에 잠겨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사녀는 영지로 가는 길에 탑이 완성되면 아사달을 따라 사비성으로 가겠다는동네 처녀의 말을 듣고, 아사달이 자기를 버린것이라 생각하여 오해를 하게 되였답니다.
실의에 빠진 아사녀는 그만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답니다. 드디어 탑이 완성되고 아사녀의 소식을 알게 된 아사달은 슬픔에 찬 나날을 보내게 되었어고
아사달은 연못에 나가 매일 울다가 아사녀의 환영을 보게 되어 아사녀의 뒤를 따라 연못 속에 몸을 던지고 말았답니다.
그 뒤로 석가탑의 그림자는 연못에 비치지 않게 되었고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고 해서 석가탑을 무영탑이라고도 불려 졌다고 합니다.불국사를 찿은 많은 사람들의 틈에 끼여 아스라이 잊혀졌던 무영탑 설화를
떠올리며 불국사 경내를 부지런히 돌아 하루 일정으로 바쁘게 짜여진 일정에 맞추어
보문단지의 벚꽃을 맞으려 가는 불국사 주차장길에도
만개한 벚꽃이 다시 여유로움의 시간으로
불국사를 다시 찿아 오라고 백야에게
아쉬움의 안녕을
전합니다.
불국사(佛國寺)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시대 법흥왕15년(528)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새로운 사찰의 건립 소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사찰 건립 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였는 바
,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문무왕 10년(670년)에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여기서 가르쳤다고 하며, 그 후 경덕왕 10년(751년)에 드디어 김대성(金大城)이 크게 개수하면서
오늘날 불국사에 상징물로 알려진 탑과 성교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불국사 건물 배치
대웅전은 중앙에 위치하여 남향하였고, 그 앞에 석등(石燈)이 있으며,
다시 그 앞의 동서에 각각 석탑 1기가 서 있다. 동쪽 다보탑(多寶塔 : 국보 20호)의
기묘하고 정밀한 형태는 유례가 드물고,
서쪽 석가탑(釋迦塔 : 국보 21호)은 예로부터 애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이 탑의 축조를 맡은 백제의 석공(石工)의 아내 아사녀(阿斯女)가
남편을 찾아와서 탑이 완성되어 영지(影池)에 그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애화(哀話)를 지니고 있어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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