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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자재암★고궁·사찰·성당/성당·사찰 2010. 1. 16. 10:18
소요산 / 자재암
소요산 자재암(2010/01/09)
소요산역에 도착하면서 내리기 시작하는 눈발이 계속되여
설경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게 합니다
자재암 현판이 달린 일주문까지 오르는 길은
하얀 눈세상으로 눈이 부시도록 아릅답습니다.소요산 일주문을 들어 서면서 오른쪽 속리교를 지나
왼쪽의 난간으로 계속 오르면 절벽을 이룬 바위가 나타납니다.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이라는 전설이 서려있어 원효대.
원효대를 지나 양쪽으로 치솟은 암벽 사이의 숲길을 오르면 곧 세심교. 세심교를 지나면서 좌측
백운암 돌담 옆을 지나면서 곧바로 자재암에 도착합니다.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세조 10년에 간행된 반야바라밀다 심경약소 언해본이 완벽하게 발견되어
보물 1211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자재암 옆에는 나한전이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자연굴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주 맛있는 물이 솟아납니다(원효샘물)이 물은 최고의 차맛을 내기로 유명하여
이곳은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담론과 산책을 유도헀다고 합니다.
바로옆 높이 20여 미터의 청량폭포가 오늘은
꽁꽁 얼어 붙어 한겨울의 또다른 볼거리를 만들어 줍니다.
소요산에는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 있습니다.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와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도 있고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 옆에 있는 공주봉(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도 있습니다.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으로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고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합니다.
계절 따라 가끔 찿는 소요산 산행에 잠시 스쳐 지나는 자재암.
오늘은 하얀 눈옷으로 갈아 입고 백야에게 좀더 머물다 가라 발길을 잡기에
자재암 이곳 저곳을 돌아 봅니다.
뒷편의 삼신각옆 돌담속 동자스님이 흰눈속에서
미소 머금은 얼굴을 살포시 내밀고 반겨 주는
모습이 곱기만 합니다.
조용히 쌓여가는 눈내리는 자재암 경내를 돌아 보면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를 다시 생각 해 봅니다. 천 300년전의 그 까마득한 옛날 ....
신라 화랑으로 여러 전투에 참가하면서 많은 죽음을 본 원효대사는
사는 것에 대한 깊은 회한과 속세의 삶에 대한 허무감 때문에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 후
마침내 출가하여 황룡사에서 승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해골에 고인 물이 상황에 따라서
때때로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에서,
그는 "모든 깨달음은 마음속에 있다" 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참선을 계속하면서
그가 깨달은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남루한 옷을 입고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중생을 구제하려고 노력 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불교는 백성들 사이에 널리 전파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에 정신적으로 큰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 때 파계하여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기도 하였으나
(무예가)를 지어 부르며 백성들속에 파고 들어 불교를 계속 전파 하였습니다.
또한 당나라에서 들여온 (금강삼매경) 을 왕과 고승들 앞에서 강론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고,
참선과 저술로 말년을 보내다 입적하였다고 합니다.
천 삼백년전의 원효대사... 그리고 요석공주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기억해 보며 자재암에 머무르는 동안 소리없이
내리는 하얀 눈은 태고의 신비스러움으로
상상의 나래를 끝없이 펴게
합니다.